유난스러운 내 아이 (예민한 아이의 독감 검사 이야기)
아이가 많으면 그 육아의 경험만큼 아이를 좀 더 능숙하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아- 어쩜 이렇게 육아는 예측 불가의 연속인 걸까?
아이가 셋이지만 어느 한 명 같은 아이가 없다. 한 배에서 태어나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중 우리 둘째는 참 유난스럽다.
둘째의 유난의 역사는 어릴 때부터 시작이 됐는데, 밥을 먹을 때 쌀에 무엇인가 섞여 있으면 맛이 이상하다 뱉어내기 일쑤였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글쎄 어린이집에서 밥에 섞인 그 작은 조를 골라내고 밥을 한 톨한 톨 먹었다 연락이 온 것이었다.
조금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토하기 일쑤에다 병원이라도 갈라 치면 들어가는 입구부터 무섭다고, 배가 아프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온갖 핑계를 대 설득하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예민한 우리 둘째가 지난 주말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콧물이 조금 났을 뿐 다른 증상은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고열이 뽝! 하고 나더니 해열제로도 잡히지가 않았다.
주말 이틀 내내 고열이 있었고 이틀이 지나고 열이 내리자마자 구토가 시작됐다.
보통 감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독감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아이는 겁도 엄청 많고 예민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참사를 대비한 비닐봉지와 물티슈를 챙겨 넣었다.
간호사 선생님 : 들어오세요.
우리 아들 : (울먹울먹)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흐흐흑 전 아직 준비가 흑흑 안 됐다고요!
하지만 더 기다린다고 해서 준비가 되지 않는 것을 그 간의 수많은 경험으로 체득한 남편은 검사를 강행했고,
의사 선생님 : 아버님 아이 좀 잡아주세요.
우리 아들 : 잡지 마세요!! 엉어어엉엉 전 잡으면 더 못한단 말이에요!!!!! 엉엉어엉
준비가 안 됐다고요. 엉엉 전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말을 들으면 더 무서우니까!!!!!!!! 말하지 말아 주세요!!!!!!!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소리를 지르기를 10분.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코를 찌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두 번이나 준비해 간 비닐봉지에 헛구역질을 하였다는 후문.
결국 독감 판정을 받고 집에서 타미플루를 먹을 때마다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렇게 나의 둘째 아들은 첫째와 막내와는 달리 유독 겁이 많고 예민하다. 말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당해낼 수가 없다.
아무리 무서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입을 쉬는 일은 결코 없다.
그래서 당시에는 설득하느라 화가 치솟지만ㅋㅋㅋ,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극한 상황에도 쉬지 않았던 입이 생각나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둘째는 참 유난스럽다.
유난히 표현이 많고, 감각이 예민해 잘 알아차린다. 덕분에 눈치가 빠르고 재미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유난히 생각이 많고, 엉뚱한 상상을 잘한다. 가끔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도 있다.
유난히 우리 부부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한 가지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기질은 절대 좋기만 하지도 절대 나쁘기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유난스러운 나의 아이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예민함을 잘 갈고닦아 세상을 다채롭게 느끼고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본인의 유난스러움도, 예민함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우리 아이는 병원에서 그 난리를 피워놓고 나오면서 한 마디를 했다.
와, 나 오늘 별로 안 울고 잘했다 진짜!
유난스럽게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 어서 독감 훌훌 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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