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
한때는 내 이야기를 글로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블로그에 글도 쓰고 수첩에 끄적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어떤 글도 읽기도 쓰기도 되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블로그를 시작해 볼까? 하다가도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다 창을 닫기를 여러 번, 책을 펼쳐도 온갖 다른 생각이 머리 속에 떠다녀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끄적임을 다시 시작하게 된 때는 최근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식탁에 나의 공간을 마련해 출근하듯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부터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이 책을 읽고 어쩌면 그 동안의 나의 권태기(?)는 결혼과 출산 이후,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나의 공간이 우리의 공간이 되면서부터 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언제든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 할머니가 집안일을 시키거나 아빠가 출출하다고 말할 때, 또는 나와 동생이 사소한 것을 요구하는 순간에.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
이 책은 살아온 집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은 집에 대한 첫 기억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일 것이다. 작가가 어릴 적 집을 생각하며 그 시절을 이야기하듯, 책을 읽으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현재까지의 삶을 함께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때는 당연하다 생각했었던, 엄마의 공간으로 생각해본 엄마의 처지.
어릴적 "어디살아?" 로 시작하는 친구의 말로 알아 차린 집이 가진 계급과 자본의 속성.
20대, 집이 아닌 방에 살며 안위를 걱정하고. 재개발 동네에 살며 현실만을 생각했던 시절.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30대에 드디어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되면서의 이야기.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아등바등 집을 고치고 있단 말이야? 월셋집을? 누구 좋으라고?"
... "사는 동안은 내 집이니까요, 월셋집이든 전셋집이든."
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집을 고치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친애하는 나 의 집에게(하재영)-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 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비록 나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언젠간 나에게도 나만의 공간이 생길 날을 꿈꿔 본다. 내가 선택한 이 집에서 좋은 시절을 보내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애쓰며 살아야겠다.
내가 머무는 곳이 곧 나고 내가 보는 것이 역시 또 나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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