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아내와 이과 남편의 환장의 결혼 이야기
어릴 적, 나의 할머니는 온 집안에 글을 붙여 놓으셨다. 시를 쓰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친척들과 함께 모이면 특별한 날에는 가족들은 편지 낭송을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편지를 써서 읽고 그날의 주인공을 축하하곤 했었다.
우리 가족은 문과 성향의 가족이었다.
나는 30살 평생을 문과 가족들과 문과 친구들과 지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는 내가 취약한 부분을 척척 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모르겠는 처음보는 기계도 뚝딱뚝딱 다루고, 길치인 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슈퍼맨처럼 길을 찾아 주었다. ㅋㅋ
하늘을 보고 막연히 예쁘다! 라고 말하는 나에게 왜 저 하늘이 예쁜지, 어떤 날씨에 더 예쁜 하늘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 주었다.
그때의 나는 "왜"라는 생각을 하는 남자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고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이 멋져 보였다.
내 삶에 왜라는 질문을 더하면 그저 예쁘다 생각했던 하늘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그냥 흘려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정성껏 맞이하는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보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을 예쁘네 생각했던 지난 날에서 벗어나, 태풍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일몰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멋진 하늘을 감상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봄이 되니 예쁜 꽃이 피었네'가 아니라 '이제 매화가 필 때가 되었구나. 이 매화는 붉은색 꽃받침이 있어 더 예쁘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이과 남편, 그것도 세상에 관심 많은 이과 남편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예전의 나에 비해서는) 매우 풍성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맛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그 맛!!" "오호!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을 때 또 생각나는 바로 그 맛!" 나의 최고의 칭찬은 나의 느낌과 기분에 근거한 이런 추상적 표현이었는데, 남편은 "음~ 양파에서 오는 건강한 단맛이 음식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는군!" 이라던가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육즙이 가득 담겨 있어서 아삭한 야채랑 같이 씹었을 때 식감이 아주 좋네."
뭐 이런 차이랄까?
그렇게 표현하려하면 표현하기 위해 나의 감각을 더 집중시켜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는 건 전에 봤던 예쁜 하늘, 전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건 아닐까? 사실 그 무엇도 같은 것은 없는데 말이다. 똑같다 생각하면 세상에 특별한 것은 그 무엇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과 남편 덕분에 더 자세히 보고 그 이유를 생각하고 정확히 기억하려 애쓰고 살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크게 있었으니,
그땐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요즘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저딴 소리를 하고 있으면 나는 소리친다.
"아 그래서 맛이 있냐고 없냐고오!! 자기가 미슐랭이야 모야 왜 평가를 하고 있어. 감탄을 하란 말이야 감탄을!"
그럼 남편은 시무룩하게 "이게 맛이 있다는 말이지..."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시댁에 갔더니, 시댁 식구들은 모두가 우리집에서는 없었던 "왜?"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내가 이과 가족에서 자란 이과 남편과 결혼을 했구나.
문과 아내와 이과 남편
빵을 좋아하는 아내와 과일을 좋아하는 남편
MBTI로 INFP 아내와 ISTJ 남편
집순이 아내와 떠돌이 남편
저녁형 아내와 아침형 남편
식성도 성향도 무엇하나 같지 않는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문과 아내와 이과 남편의 환장의 결혼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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